최근 대한민국 국민들 사이에서 재즈(Jazz)가 큰 인기다. 재즈 역사를 정립 시작한지는 꽤 오래됐다.
재즈 최전성기 시절이던 1970년대 부터다. 그 당시 재즈 역사에 관한 자료라고 한다면
나이 많은 재즈 연주가들의 옛날 이야기 정도였고 거기엔 늘 버디볼든(Buddy Bolden)
킹 올리버(King Oliver) 같은 뉴올리언스 출신에 코넷 연주가들이 회자된다.
그렇다면 어느날 갑자기 킹 올리버 버디볼든 같은 옛날 사람들이 재즈를 뚝딱 만들어냈느냐?
결론부터 말해 그것은 아니다.
맨해튼이나 시카고 뒷골목 연주가들 사이에서 오가는 말과 또 역사학자나 음악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킹 올리버와 그의 아버지 세대 때에 흑인들의 인권탄압 그리고 가난과 고통 속에서 재즈가 태동했다고 묘사되곤 한다.
때때로 좀 더 뭔가 있어보이려고 근사하게 포장하고픈 이야기꾼들에겐 재즈의 역사는 나폴레옹 시대까지 거슬러 오른다.
1800년 프랑스는 스페인으로부터 루이지애나를 되돌려받지만 당장 관리도 안되고 전쟁 준비하던 터라 루이지애나는 애물단지 같은 것이었다. 결국 1803년 미국의 위대한 거래로 기록된 '프랑스-미국 루이지애나 매매'가 이뤄진다.
참고로 루이지애나 지역명은 프랑스 왕 루이 15세의 이름을 따와 루이지애나라고 한다.
국가가 한 특정 지역을 다른 나라에 판다는 것은 단순히 땅이란 물건만이 다가 아니었다. 그 지역 살고있는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도 포함된다. 앞서 스페인, 프랑스인들은 흑인 여자를 많이 첩으로 두었고 거기서 사생아도 많았다.
따라서 프랑스는 미국에게 루이지애나 판매 댓가로 조건을 내거는데, 그것은 루이지애나주 흑인이라 할지라도 스페인과
프랑스 백인의 첩이거나 그 첩의 자식이라면 흑인일지라도 백인과 똑같은 동등한 신분을 갖는단 조건이었다.
즉, 스페인, 프랑스에 근본을 둔다면 흑인이라도 꼭 주인을 섬기지 않아도 되는 자유란 것이다.
당시 흑인은 백인의 아내는 되지 못하고 대부분 첩이거나 사생아를 둔 하녀였는데, 그런 첩 내지는 하녀가 프랑스, 스페인
남자들 사이에서 흑인 혼혈아 출산 등 그 근본이 프랑스, 스페인이면 여느 미국 백인과 동등한 권리를 누린다는 것이다.
여기서 스페인, 프랑스인과 흑인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혼열 흑인을 가리켜 크레올(Creole)이라 불렀다.
크레올... 쉽게 말해 앨리트 흑인, 즉 백인과 동등한 신분이란 뜻이다.
크레올들은 백인과 같은 교육을 받았으며 그 덕에 피아노를 배우며 클래식 연주자가 되지만
백인 우월주의 클래식 그라운드에서 인정 못 받고 언더그라운드로 내려와 피아노 치고 연주했는데, 그것이
클래식 기반 피아노 연주에 '래그타임(RagTime)'이란 새로운 장르로 발전되었다고들 한다.
'래그(조각)+타임(악보 마디)' 라고해 악보를 보고 연주하다 차오르는 흥에 맞추어
사이키하게 마디를 끊어치거나 당겨치며 '싱코페이션'으로 리듬에 변칙을 준다
따라서 악보 속 춤추는 콩나물(음표) 내걸린 마디를 조각낸다해 래그타임이다.
이것이 즉흥 연주 재즈의 시발점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참고로 래그타임은 즉흥 연주 재즈와는 달리 악보 보며 연주한다.
또 일각에서는 미국 남북전쟁에서 북부군이 군악대를 형성하며 재즈가 창조됐다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쟁 통에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여러 악기들이 조화를 이룬 연주에서 재즈가 태동했다며 노예 해방 문제로
북부군으로 전쟁 참전했던 흑인들이 전쟁 해산 후 고향 뉴올리언스에서 정착해 사는데, 장례 행사나 기념식 날에
전쟁 때 연주하던 군악대 행진곡들을 연주했으며 이것이 뉴올리언스 여러 축제에서 메인으로 연주되며
훗날 브라스밴드 행진곡으로 발전하고 이어서 시카고, 맨해튼 재즈로 계승 됐다는 사람들도 있다.
남북전쟁엔 여러 이야기가 많은데 역사적 정론은 노예해방이다. 일찍이
뉴욕, 시카고 같은 북부 지역에선 상업과 공업지구 발달로 도시화가 완성돼 햇가족화가 정착돼 갔고
1850년경 북부 지역엔 노예보단 사업주의 직원이 더 많이 필요했다.
그런 환경 영향으로 50년대 말부터 북부에선 불필요한 노예를 남부 쪽으로 거의 내다 팔았다.
큰 농장들이 있는 남부 지방 특히 뉴올리언스 쪽으로 노예들을 많이 팔았다.
또 농업중심에서 상업, 공업으로 격변하는 미국 사회엔 인력 인프라 교육 일환으로
근대화 사상 바람이 강력하게 불었고 또 한편 햇가족화 된 도시에선
기존까지 위엄있는 근엄함에 복종을 요하던 종교적 관점 윤리를 벗어나 개인 인권주의식에
강력한 윤리의식 즉, 실존주의 철학이 교육 중심에 커다랗게 자리 잡는다.
공업 대량생산 체제 직원 양성 중심인 북부와는 달리 농업 중심지인 남부에선 가족처럼 지내며 농장 관리할
노예가 필요했고 결국 많은 노예들이 뉴올리언스에 집중되다시피 했다.
이것이 결국 남,북 지역간 노예제도에 대한 상반된 이해관계 결국 큰 이견차가 생기며
남북 전쟁 원흉이란 것이 역사적 정론이다.
여기서 전쟁이 격화, 장기전으로 접어들면서(전쟁기간 : 1861~1865년 까지) 전쟁을 몸소 체험한 흑인들에게도
강력한 이념 사상 바람이 불고 자연적으로 흑인들의 자유에 관한 외침 그리고 흑인 근본주의로 빠져드는데
그것은 아프리카에 대한 향수로 여럿이 모여 아프리카 리듬과 박자에 연주를 하는데
이 같은 흑인들 음악 소통구가 결국 재즈의 태동기였다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훗날 전쟁 해산 후 많은 흑인들이 해방을 맞아 자립을 해야했고 당장에 쉽고 빠르게 배우는 일은
쇠를 깎고 들고 나르는 공장 일이었는데 그런 일들은 모두 맨해튼이나 시카고에만 있는 것만 같았다.
결국 1890년대부터 1900년대 초까지 뉴올리언스 인구가 급속도로 시카고, 맨해튼으로 빠져나갔다.
따라서 시카고와 맨해튼엔 흑인 술집이 번창했고 또 흑인 음악들이 많아지며
뉴올리언스의 음악이 고스란히 시카고 맨해튼으로 옮겨갔다해 뉴올리언스가 재즈 제1 고향 시카고, 맨해튼을
제2 고향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 흑인 이주가 한창 이뤄지던 1900년대 초 킹 올리버, 루이 암스트롱
두 사람의 만남 시기를 재즈의 여명기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편, 재즈는 영국 아일랜드인들이 파티할 때 모여서 트럼펫 불며 피아노 연주하고 노래하고 춤추며
놀던 스윙팝에서 발전 계승됐단 이야기도 있으며
단지 악기 배운 흑인들이 모여 흥에 겨워 기분나는대로 연주하는 블루스와 스윙팝을
결합한 거리 악단 음악이 재즈라는 것과 그런 흥에 겨운 스윙 음악들이 스테이지로 올라와 노래하고 춤추며
훗날 JiveJive 그리고 그것이 Jazz가 되었다란 말들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것들이 재즈(Jazz)와 무슨 상관이며 왜 Jazz이냐? Jazz의 어원은 무엇이냐? 라는
질문한다면 정답은 없다. 거기엔 여러 주장이 있는데,
재즈의 어원은 길에서 즉흥 연주에 감탄한 사람들이 '제~예~(je~ye~)'란
감탄사가 나중에 명사 Jazz로 되었다는 주장이 있고 또 Jive에서 발음상 Jazz로 바꼈다는 주장도 있다.
또 'Jass' 에서 Jazz로 됐다는 주장도 있는데 Jass는 1910년경 뉴올리언스 흑인들이 쓰는 비속어로
대한민국식으로 풀이하자면 '존나' 의미와 비슷하다.
ex) 존나 좋아, 존나 시러, 존나 불행해, 존나 행복해
대한민국에서 모두가 다 쓰고 듣는다는 '존나'의 근본을 아는 사람은 없다.
존나도 사실 따지고 보면 '좆나'에서 변형된 것이며 최근엔 '겁나'로 많이 사용된다.
이것이 계속가다 나중 100년 후 누군가 겁나와 좆나, 존나에 대한
명확한 어원을 찾고자 하는 것이 지금 Jazz의 어원 찾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다.
Jazz는 옛날 길바닥에서 탄생한 단어이기 때문에 재즈 어원 근본을 아는 사람은 없다.
이렇듯 재즈 어원은 여러 정황상 설명은 가능하겠지만 명확한 어원에 관한 시작점은 아무도 모른다.
그럼 정황상 설명해드리자면 1910년경 길에서 연주자들이 자신도 알수없는 장르 음악을 즉흥적으로
몇곡 연주하노라면 길가다 듣던 관중들이 '존나 좋아!(Jazz good!)' 외쳐대는 것이 Jazz의 시작이란 주장이다.
여기서 길거리에서 연주하던 연주자 자신도 알수없는 장르란 연주자들이 악기 배울 때 보고 듣던
클래식 무대 뒷켠에서 크레올들이 연주하며 창시한 래그타임 스타일이다.
따라서 재즈(Jazz) 뜻은 래그타임 스타일에 즉흥 연주를 더한 음악이며 거기에 관객이
연주자에게 보내는 엄지척 "엄청 좋은 음악!" 찬사 표현이 '재즈'로 정리 된다.
따라서 재즈는 '길바닥 음악', '즉흥 연주', '여러 악기들의 하모니' 란 주장들이 있다.
결국 '재즈는 20세기 들어 탄생한 퓨전 음악' 정도로 정리된다.
한편, 미국 사회운동이 격화되던 1970년대 재즈 격변기엔 재즈가 흑인 노예의 뼈아픈 역사라며
특정 정치 집단에서 했던 사회적 선동들이 지금까지 전해져내려 지금도 재즈 공부하면 인류사에
어두운 인간 이면사를 봐야만 하는 등 결국 특정 정당 이념에 치우치는 안타까운 일도 많은데,
사실 역사와 사회현상이란 것이 그리 단편적인 것이 다가 아니다.
대한민국엔 그나마 덜하지만 특히, 미국이나 서방에선 재즈를 파고들면 골 깊은 인종차별과 인권탄압
주제가 고개를 들며 사회 갈등 문제로 이어진다. 하지만 명확히 말해 재즈는 탄압받은 흑인의 음악에서 나온 게 아니다.
옛부터 재즈 연주자는 백인도 많고 흑인도 많았다.
재즈는 단지 격변하는 시대 유행따라 흘러, 그냥 나온 음악이다.
그 속엔 백인, 흑인 떠나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의 슬픔을 담은 음악도 있을테고 또 어렵지만 기쁘게 사는 사람의
음악도 있다. 또 별로 어려울 것도 없고 슬프거나 기쁠 것도 없이
그냥 음악이 좋아 연주하고 연주하면 기분이 좋아져 더 연주하다 흥에 겨워 멋진 즉흥 연주가 나오는,
악기 잘 다루는 사람들이 모여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숙련된 악기 연주자들의 하모니, 그것이 바로 재즈일테다.
“재즈는 살아있는 생명체여서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다”며 “우리의 정서와 감동, 아이디어, 소리는 월드뮤직으로 승화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 때문에 우리 전통음악인 사물놀이의 대안을 재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인재진 사장의 지론이다. -2002.11.22 전자신문- |
대한민국에 재즈가 상륙한지는 나폴레옹 시대로부터 180년 세월 지난 1980년대다.
그보다 앞서 1930년대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 40~50년대 미군정청 이후 이태원 할로야 골목 거리에서
재즈가 흘렀지만 본격적으로 대한민국 세계 다양한 재즈가 알려진건 1980년대 부터다.
참고로 '할로야'는 hello 인사 뜻을 말한다. 해방 이후 미군 기지 쪽으로 군용 지프카가 지나면
사람들이 "할로야~할로야~" 미국식으로 인사했고 그러면 지프카에 있던 군인들이 초콜렛을 던져줬다 여기서
유래해 이태원 미군 인근 골목 거리를 할로야 골목이라고 한다.
세계 냉전기 중국이 세계 경제시장 문을 걸어잠군 영향으로 대한민국 경제가 급성장해 경제 수준이
가파르게 오르며 국가가 서서히 문화를 논하던 1980년대 대한민국은 해외 문물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왔고 그 가운데 당시 서방 사회에서 크게 유행하던 재즈란 음악 장르가 국내에 널리 알려진다.
1980 대한민국에선 오늘날 재즈의 뿌리라 불리는 '마일스데이비스(Miles Davis)', 목청으로 나팔 소릴 뿜어낸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들이 크게 알려지면서 재즈와 함께 미국 문화와 역사가 보급되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 당시 대한민국에서 음악 좀 듣는다는 재즈맨들은 시카고, 맨해튼 풍의 진득한 재즈보단
일렉기타와 신디사이저 최신 악기들로 신나고 경쾌한 재즈 구사하던 이웃나라 일본의
'카시오페아(CASIOPEA)' 재즈를 주목해왔다.
재즈 변천사를 보면 [ 관악기,타악기(1900~1910년대) ->건반악기,관악기,타악기(1910~1940) ->
건반, 관악기, 타악기, 현악기(1940~1970) ] 중심에 리듬 박자 음악임을 알 수 있는데 카시오페아는
신디사이저, 일렉기타 중심에 완성도 높은 전자 사운드를 가져오며 기존 재즈 악기들을 밀어내
고전 악기들로 만들어 버린다.
기타,베이스,드럼,건반에 4인조 퓨전재즈 그룹 카시오페아는 보통 BASS 박자와 신디사이저 리듬에
일렉기타가 메인에서 이끌어가다간 리더 '노로 잇세이(野呂 一生)' 기타 독주로 절정을 찍는 형식에 반복되는 패턴이다.
그렇게 강력한 일렉기타 사운드가 두드러져서인지 건반 전자 음악과 함께 쿵쾅대는 일렉기타의 빠른 박자 리듬에
카시오페아 음악은 영락없는 락음악(Rock)이란 오해도 많다.
하지만 재즈를 오래들은 사람이라면 카시오페아는 당시 유행하던 락이란 대중음악 영향을 받았는지 담았는지....
아무튼 그런 것이지, 전자 건반, 기타가 환상의 앙상블을 이루며 디지털 사운드 스윙과 그루브에
카시오페아(CASIOPEA) 음악적 요소는 완전한 재즈다.
당시 대중들 심장을 뛰게하던 락음악적 요소들이 무거운 중저음 Base에 진득하게 묻어나며
상당히 신비로운 '퓨전재즈(Fusion Jazz)'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1979년 그렇게 카시오페아의 새롭고 신비한 음악 정규 앨범 1집이 세상에 공개됐다.
허지만 1979년 카시오페아 정규앨범 1집이 발매와 동시에 곧바로 대한민국에 알려진 것은 아니다. 준공식적으로
대한민국에 카시오페아가 알려진 것은 카시오페아의 7번째 정규앨범 1982년 발매된 'Mint Jams' 앨범부터다.
앨범 발매 후 몇년 지난 1984년경 일본을 왕래하며 재즈 음악 관심있어하던 사람들에 의해 소량의 LP, CD가 들어왔으며
이것이 훗날 불법 카세트 테이프로 레코딩 돼 노점상에서 많이 판매됐다. 하지만 장르가 낯설고 거리감 있어 국내 반응이 썩 좋지않아 아무도 안 들었지만 그래도 우연히 카시오페아의 음악을 듣게된 소수 사람들이 카시오페아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당시 정보 공유가 없는 시대여서 각자들 알아서 골방에서(?) 정보 수집하며 카시오페아 음악을 들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생계나 비지니스 문제로 트랜드였던 재즈 무대 위에 서고싶은 대한민국 연주자들 교류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Mint Jams 앨범은 도쿄에서 라이브로 연주한 곡을 녹음한 LIVE앨범이다.
이 앨범은 일본 현지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명반으로 꼽힌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선 앨범에 대한 반응은 별로였다고 한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같은 대중적 컴퓨터 통신 시대가 열리면서
카시오페아(casiopea)에 관한 정보가 공유되고 말들이 나오며 급기야 공영 방송국 프로에서도
이웃나라 일본의 퓨전재즈라며 소개가 많아져 대한민국에 카시오페아가 널리 알려진다.
그러면서 점차 국내 시장에서 일부 앨범들만 정식 수입 배급됐다.
또 한편에선 카시오페아만큼 국내 널리 알려진 일본 퓨전재즈 그룹 티스퀘어(T-Square)가
1999년 플레이스테이션1(PS1) 하드웨어로 발매된 레이싱 게임 그란투리스모2 오프닝곡
Moon Over the Castle 삽입으로 게임천국 대한민국 많은 국민들께 퓨전재즈가 큰 각광 받는 계기가 된다.
실제로 대한민국엔 그란투리스모2를 통해 퓨전재즈 장르에 귀를 기울이며
티스퀘어 그리고 카시오페아 접한 유저도 매우 많다.
이렇듯 게임과 같은 문화산업을 비롯 재즈의 인기는 단순히 음악 장르에만 머물지 않았던 것이다.
1990년대 그보다 앞서 1980년대 아케이드(ARCADE)에도 재즈가 많이 등장한다.
앞서 소개한 1999년 그란투리스모 보다 12년 앞선 1987년 제작사 테크노스재팬은 아케이드 교과서에도 나오는
역사적인 대작 '쌍용(Double Dragon)' 미션3에서 기존에 없던 형식에 상당히 도전적인 16비트 전자 사운드에
'프로그레시브 재즈'를 BGM에 담았다. 당시 공장 근처에서 드럼통 굴리고 쇠파이프 휘두르는 이른바
'인더스트리 갱스터' 세계관에 딱 들어맞는 예술 재즈라는 평가와 함께
'허비행콕'과 같이 새로운 사운드를 추구한 진정한 프로그레시브 재즈 진수를 보여줬다며
아케이드 유저들 사이에선 지금도 재즈 명곡으로 회자된다.
얼마 후 1989년 SNK 제작사는 아케이드로 출시한 '스트리트 스마트(Street Smart)'란 게임 후반부 간부급 보스에서
진한 80년대 시카고 정통파 재즈를 16비트 BGM 삽입으로 유저들 이목을 끌었다고 한다.
제작사 세가(SEGA)도 1989년 아케이드 대표작으로 내논 '사이버폴리스 이 스와트(Cyber Police E-swat)'
에서 진한 펑크재즈(FunkJazz) BGM 삽입 시키며 아케이드 팬들을 매료 시켰다고 한다.
또 1995년 인류문화사에 한 획을 그은 '더킹오브파이터즈95(The King Of Fighters'95)'
주인공 야가미 이오리 스테이지 펑크재즈를 32비트 전자음으로 풀어내 당시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주며
유저들을 재즈에 열광케 했다고 한다.
또 이듬해인 1996년 '플레이스테이션1(PlayStation)' 하드웨어로 KOF95 발매 당시
이오리 스테이지 BGM만 펑키(Funky)한 스타일로 실제 연주한 곡을 레코딩 삽입해 팬들에 대한 서비스와
재즈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보였다.
또 끝판대장 루갈 번스타인 물리친 이후 자막 올라오는
Steff Roll 재즈 BGM도 대한민국 아케이드 BGM 명예의 전당에 오른다.
'킹오브파이터즈95'에 화답이라도 하듯 이듬해 1996년 킹오브파이터즈의 영원한 라이벌
캡콤(CAPCOM) 타이틀 시리즈 최신작 '스트리트파이터EX(Street Figter EX)' 가 출시된다.
'스파EX'엔 대한민국 아케이드 BGM 역사에 기라성 같은 명곡들이 쏟아져나왔다고 전해진다.
먼저 알렌스나이더 스테이지에 90년대 맨해튼풍 '뉴에이지 재즈'를 담았고 사쿠라 스테이지엔 전형적인 일본 스타일에 경쾌한 '퓨전재즈'를 담아 모두 다 주옥 같은 명곡으로 기록돼 있다.
문제가 된 BGM, 독트린다크 스테이지 강력한 펑크재즈 언더튜브(under tube)는
폐수로 철벅거리는 지하 세계 느낌을 살려 아케이드 유저들께 소위 '하수구 펑크 그루브 신드룸' 불러 일으키며
많은 마니아 층을 낳았다. 언더튜브 역시 대한민국 아케이드 BGM 명예의 전당에 오른다.
이런 여파에서인지 최근 MIDI 추출 프로그램을 통해 카시오페아 재즈 음악을 64비트로 출력해 과거 아케이드
느낌으로 듣는 사람들도 많다.
90년대, 재즈는 아케이드는 물론 대한민국 안방까지 들려왔다고 한다.
지상파 라디오, TV 방송 심지어 CF에서까지 카시오페아, 티스퀘어,빌 에반스,
척맨지오네 필소굿 스탄게츠 등 해외 재즈 음악을 지나치다 할만큼 시그널 음악으로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왜 방송에서 외국 재즈만 트는걸까요? 그래서 대한민국 재즈 알리기 위해 재즈 연주 시작했습니다!"
90년대 당시 방송 출연한 대한민국 재즈 연주가들의 반복되는 대사였다고 한다.
이렇듯 재즈는 여러 매체에서 활용할 만큼 실용적이고 또 만인에게 사랑 받는 음악으로 기록돼 있다.
또 1995년 시즌 6회 째를 맞는 당대 최고 애니메이션 '심슨(The SimpSons)' 에피소드 22에 천재 리사가
테너 섹소폰 불고 또 '재즈맨' 노래도 부르는데, 진행 내내 뉴올리언스 정통파 재즈 BGM 깔린
이 에피소드 때문에 시즌6 OST 앨범은 강력한 판매고 쌓기도 했다. 또 오늘날 여느 시즌 OST 앨범들과는
다른 매우 강한 '리셀가격'을 형성하고도 있다.
이렇듯 20세기 초부터 시작해 격변의 시대를 거친 90년대 대한민국에선 대중가요라던지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재즈 뮤지션들이 급속도로 증가했으나 아직 재즈라는 그들만의 고유 역사와 음악이
대중문화와는 적절한 합의점을 이루지 못한 탓인지 잘 알려지거나 소개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것이 오늘날 까지 이어져 대한민국에서 재즈란 뒷골목 연주가들 사이에 정체된
흑인 역사 이야기로만 머물러 있다.
그런 한편 1993년 '낯선사람들'이란 재즈 그룹이 가요계에 등장한다.
재즈 감각과 리듬을 90년대 대한민국 정서에 맞춰 대중 가요계에 나오지만
다양한 음악, 오락 요소들과 함께 볼거리가 진을 친 대중음악 시장에 달랑 음악 하나 가지고나온
그룹 낯선사람들의 인기는 별로였다고 한다.
이듬해였던 1994년 가수 신효범의 '난 널 사랑해' 재즈 곡이 대히트 친다.
한 남자를 사랑한 애틋한 여자 마음을 서정적인 가사로 옮겨 실은 이 곡은 대중문화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오늘날 까지 대한민국 대중 가요계에 가장 근접한 재즈로 기록돼 있다.
잘 알려지지않은 이야기지만 90년대 압구정엔 공부도 잘하고 명문대에 재벌 집안에
고급 외제차와 명품 패션을 하고다니는 'XY족'이 있었다.
이들은 허울 뿐인 속빈 강정 같은 기성세대들의 허영어린 고급적인 문화를 거부하며
겉은 초라해도 앙꼬 꽉찬 붕어빵 같은 서민적이고 또 대중적인 걸 지향한다는
1970~1975 출생인 20대 청춘들이었다고 한다.
XY족은 대중매체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다분히 개인 개성을 소중히 하고 또 타인의 개성도
자기만큼 존중한다. 상당히 이성적이고 또 이상지향적인 지식인들이었다.
압구정 재즈바, 재즈클럽은 바로 그런 XY족들이 즐기던 문화 공간이기도 했다.
1995년 대한민국 기성세대와 매스컴 사회는 사회 상류계층의 자녀고 또 지식인이던
이 'XY족'들의 음악 '재즈'를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고 그 일환으로 '째즈'란 드라마 각본이 쓰여져
대한민국 공중파 TV에서 방영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재즈 BGM이 깔리면서
재즈적인 느낌 영상과 내용으로 가득 채운 드라마 째즈엔 1995년 당시 대한민국
최고 미남 배우 캐스팅으로 채워져 여성들이 열광하기 시작하며 드라마와 함께
재즈 음악은 대국민적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하지만 XY족에 대한 사실 왜곡으로 가득찬
드라마 작품성은 많은 비판 받았다고 한다.
또 90년대에 'MBC수요예술무대' 란 TV 방송 프로에서 대중음악에서 소외된 음악들을 소개시켜주곤 했는데
재즈 연주자들이 종종 방송에 소개 되었다고 한다. 또 여러 왕성한 활동으로 대한민국에서 대중들에게
큰 두각을 드러내던 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이 90년대 장기간 수요예술무대 MC를 맡으며
대중에게 재즈 알리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1998년 수요예술무대 김광민 재즈밴드로
방송에 출연해 과거 1980년 '빌 위더스(Bill Withers)'가 부른 '단지 우리 둘만이(Just the Two of Us)'
편곡해 완성도 높은 무대를 선보여 국내에서 재즈란 장르를 크게 알렸다고 한다.
또 1998년 국내 'WAVE'란 퓨전재즈 그룹이 재즈 알리기에 열기를 더했다.
섹소폰, 베이스, 기타, 드럼, 건반 5인조 그룹 웨이브는 정규 1집 발표하며
여러 지상파, 케이블 방송 활동을 많이 하면서 대한민국 재즈 파이(Pie)를 드넓혔다고 한다.
앨범 메뉴얼 멤버 소개로 보아 교회에서 만난 종교 지인들로 사료되며 다른 멤버들
평균 연령에 비해 나이차가 많이 나는 최고 연장자인 기타 연주자가
많은 곡을 작곡한 것으로 사료된다.
그 외로도 여기 언급되지 않은 대한민국 많은 탑 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재즈 연주자들의
다양한 많은 활동했으나, 1990년대 대한민국에서 잠시 반짝한 재즈는 대중음악 깊게 자리잡진 못했다며
대한민국에 20세기를 마지막으로 "국내엔 21세기 재즈란 없었다" 전문가들의 일관된 견해다.
2023년 최근 21세기 AI 정보통신 시대에 들어와 많은 사람들이 정보 탐색으로 질 좋은 음악을 찾기 시작했다.
잘 다듬어진 연주자들의 음악 그리고 과하지 않으면서도 흥겹게 리듬과 박자 타는 재즈가 특히
젊은 MZ 세대들께 높은 인기를 얻어 1920년대 부터 1990년대 까지 재즈 명반 듣는 것이
MZ 세대들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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