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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론 korea news

이재명,윤석열 고용 노동정책 공약/이재명 모병제,히키코모리 30년 일본 중년 남성의 고독한 죽음

by [시론] 2021.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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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과 비교적 포근한 겨울 2021.12.25 성탄절인 오늘, 일본 공영방송 NHK에선
그동안 일본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슬픈 소식을 전했다.
3년 전 매서운 한파가 불던 겨울  한 중년 남성의 쓸쓸한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외로운 죽음

코끝 시린 매서운 칼바람 불던 2018년 추운 겨울이었다. 현관 문 열고 집안에 들어선 사회복지사 만유키씨는

코를 막고 어깨를 움츠려야만 했다. 집안 곳곳 벌겨진 쓰레기들에서 나는 악취와 

여기저기 스며든 강한 웃풍 그리고 온기라곤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집안 체감온도는 바깥 날씨보다 더 추웠기 때문이다. 
그런 냉골방 쓰레기더미 속 창백한 얼굴로 누운 사람은 이 집의 주인 56세 중년 남성 '신이치'씨였다.

사망한지 한참 지난 후였다.

 

 

싸늘한 죽음을 맞이한 신이치씨는 사회 은둔자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였다. 

안타까운 죽음을 보도한 일본 공영방송 NHK에 따르면 이번 사망한 신이치는

싱싱하던 결혼 적령기에 학업과 취업에만 고통스러워하다 결국 꽃다운 나이 사랑 한번 옳게 못해보고

독거 노총각 신세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신이치, 그의 히키코모리 경력은 자그마치 30년 이상이라 소개했다. 
대한민국 '88서울 올림픽'이 치러지기 그 이전부터 히키코모리를 해왔다는 신이치 소식에
한/일 네티즌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1985년 '88서울올림픽 유치 기념우표]

텅 빈 방안에 외로이 홀로 사망한 신이치씨는 외동아들은 아니었다.
밑으로 2년 아래 동생이 있는 장남이었다. 형의 사망 소식에 동생 지로씨는
그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던 친가로 달려왔다.

[신이치씨의 2년 아래 동생 지로(54세) - 형의 사망 소식을 듣고 달려왔지만 그 곳엔 쓰레기 뿐이었다.]

"한때 가족이 거실로 사용했던 1층 방에서, 형은 쓰레기에 묻혀 죽었다.
저영양, 저체온에 의한 쇠약사였다."며 지로씨는 방 안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1972년 거실에서 찍은 가족사진 엄마 앞에 형 신이치 옆에 동생 지로]

동생 지로는 "형은 20대 무렵부터 히키코모리가 되었습니다"며
"40대 중반에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또 저와 크게 다투어 2010년 부로는
형과 연락을 끊고 살았습니다." 동생 지로는 말했다.

-독거노총각으로 사망한 신이치, 왜 히키코모리 되었나?

이 같은 56세 중년 남의 쇠약사를 놓고 일본 사회복지당국에선 원인 분석에 나섰다.
그리고 단서가 될만한 자료를 발견하여 NHK를 통해 대공개 했다. 그 단서라는 것은
신이치보다 10년 먼저 사망한 그의 아버지 요시유키씨의 일기장이었다.
요시유키의 일기장엔 이번 독거 노총각으로 사망한 56세 신이치가 젊은 시절
히키코모리가 된 것을 짐작케 하는 꽤나 긴 세월 동안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일기장엔 요시유키씨가 사망하기 얼마 전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며 NHK는
일부 내용을 공개했다.

[35년간 써온 아버지 요시유키의 일기장]


(아버지의 일기)
[나에게, 어쨌든 안정시키듯이 말해주고 있다. 아들은 가능한 빨리 건강을 되찾아, 취업하고 싶다며
노력하고 있다.]
그 곳엔 우리가 흔히 예상할 수 있는 방안에서 컴 게임만 하려는 히키코모리의
모습이 아니었다. 어떡해서든 실업자의 사슬을 끊고 건강을 되찾아 취업하고자 노력하며
아버지를 안심 시키려는 아들에 대한 글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 히키코모리 아들을 둔 한 가장의 일기

NHK에 따르면 요시유키씨의 일기장은 자그마치 35년 간에 방대한 양을 담고 있었다.
일기장 최초 시작일은 아버지 요시유키의 나이 40세였던 1972년 부터였다.
장남 신이치 10세 막내 지로 8세 때의 것으로 이제 갓 중년으로 접어든 한 가장으로
앞으로에 '희망'그리고 지금에 '다짐'과 같은 각오가 넘쳐나는 글들로 일기는 시작된다.

(아버지의 일기)
[바라는 것, 소원은 많이 있다. 허나 그것을 향해 계속 노력할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으로서 가정에 아래와 같은 두 가지 규칙을 지켜 나갈테다.
1. 규칙적인 생활
2. 밝은 가정 창조] - 1972년 일기 중 -

일기를 쓴 신이치의 아버지 요시유키씨는 일본 제철소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했으며
그의 아내는 전업주부였다.

[1972년 요시유키씨의 일기장]

일기장엔 나름에 가훈이라던지 탄탄한 가정을 위한 가장으로서에 요시유키 그의 여러 소망이 적혀 있었다.
그 밖에 두 아들이 성장하는 기간 내도록 일기장엔 아들과 목욕, 아들과 캐치볼,생일축하, 가족 피크닉 등
이런저런 평온한 가정에서의 일상이 적혀있었다.
그러다 1982년경 장남 신이치가 대학 입시 시기에 성적과 진로 등에 관한 일들을 시작으로
아들에 대한 깊은 고민과 함께 가정엔 점점 짙은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어린시절 장남 신이치와 한가한 주말을 보내는 아버지 요시유키]

- 신이치의 어두운 진로 그리고 어두워진 가정

 

아빠와 아들인 부자관계가 소원해지고 가정에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신이치가 

대학 입시 시기를 맞이한 1982년 경이었다. 일본 수험전쟁이 과열되어 '편차치' 그리 '고학력'을 

추구한 시대에 신이치는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인 영어를 공부하고 싶다며 영어 영문학과가 있는

대학을 목표로 공부 했지만, 성적은 추락해 고민의 나날을 보내게 되고 학업 성적에 시달리며

자신감을 잃는 아들의 모습에 아버지 요시유키는 답답한 심정을 일기장에 기록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일기)
[신이치가 오늘부터 예비교(재수학원)에 다닌다. 반년의 수업료가 20만엔(한화 약200만원)

통학버스를 월 정기로 끊으면 반년으로 27만엔 정도가 들 것이다.

그걸로 괜찮다면 부모로서 어떻게든 위로가 되겠지만, 나날이 풀 죽은 신이치에게선 자신감 있는 모습이 전혀 없다.

이대로 공부하는 것이 좋을지 아님 직장 구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다. 지금 신이치의 기분을 잘 모르겠다.]

[학생 시절에 신이치]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후로 3년 연속, 영어 영문학과가 있던 지망한 대학에 합격할 수 없었던 신이치.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요시유키는 아들에게 진학을 포기하고 자립하도록 요구한 기록이 일기장을 통해 드러났다. 

(아버지의 일기)

아침에 신이치와 이야기 했다. 대학 입시도 벌써 3번째 실패, 아들이 일류 대학을 노리고 실패해 또 한번 더 하겠다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3, 4류 대학에서 실패해, 1년 재수를 더하겠다니 너무 답답하다.

신이치는 자신을 너무 모른다. 역시, 이 근처에서 취직이라도 하는 것이 타당하단 생각이다.]

 
 

 

그런 신이치는 아버지의 권유대로 처음엔 자잘한 일이라도 할수있게끔 공무원 같이 안정된 일에 취직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마저 여의치 않았고 결국 공무원이 되지못한 신이치는 고액의 백과사전 방문 판매를 하는

비정규직에 취직했다. 한 손에 지도를 쥔 채 발에 땀나도록 여러 집을 방문하는 등

1권이라도 더 많이 팔려고 노력을 거듭했지만 영업 성적이 좋지 못해 신이치는 결국 해고당한다.

 

또 신이치는 21세 때 병원 원무과에 정직원으로 취업하지만, 신이치는 만족하지 않았는지 10개월 가량 근무하다 직장을 그만 둔다. 이 같은 아들의 모습이 아버지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음을 일기장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일기)

 [모처럼 정규직으로 병원 취직이 잘 되었는데 또 직장에 안 간다니, 대체 무엇이 불만스럽다는 것인가?

아들이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 같아 부모로서 많이 걱정스럽다.]

 

- 56세에 히키코모리로 '생'을 마감한 신이치 그리고

  아버지의 역동적이었던 '삶'

아들 신이치에게 매번 사회 기반을 다잡고 자립을 요구한 아버지 요시유키.
일본 사회복지 당국에선 그런 아버지가 아들을 다소 절박한 심정으로 내몰았을 거라는 의견을 냈다.
그 배경에는, 신이치 아버지 요시유키가 살아온 이른바 일본 경제 황금시대를 거론했다.
아버지는 1932년생으로 일본의 경제 대황금시대를 살아온 세대인 반면 아들 신이치는
일본의 꺼져가는 경제 거품 시기에 사회로 내물린 1962년생 이었다는 설명이었다.
요컨대 아버지가 아들 세대를 잘 이해하지 못했을 거란 추정이었다.

사회복지당국에선 1932년생 요시유키 그가 고생 끝에 안정된 생활을 직접 손에 넣었다는
자신의 몸소 겪은 삶에 대한 경험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아들 신이치의
방황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거란 분석을 내놨다.

 

NHK 설명에 따르면 1932년 생이었던 요시유키는 1945년 히로시마 원폭으로 태평양전쟁 패배로

종전 선언했던 당시 그의 나이 14세였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을 설명하며 새 시대를 맞은 일본

사회에서 1932년생 요시유키는 일본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던,

일본 폭풍 성장 시대에 주역이었다며 NHK는 요시유키 세대를 정리했다. 

 

종전을 맞고 얼마 후 요시유키는 니가타에 상경했다. 낮엔 소년공으로 일본 제철 공장에서 일하며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해 훗날 '일본 제철소'에 정규직에 관리직으로 취업한다.

[요시유키 일본 제철소에서의 젊은시절]

 

곧이어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세계가 냉전을 맞으면서 일본의 제철 산업은 물론 일본 경제는

내수,외수 할 거 없이 고도에 폭발적인 성장 시기를 맞는다. 아시아는 물론 세계 경제는 고도의 기술을 갖추고

친 미국 체제인 일본 중심으로 돌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때 요시유키 그의 나이 19세였다.

그런 가운데 일본 사회는 노력만 하면 누구나 결혼도 하고 원만한 가정을 차려

풍성해질 수 있었고 또  모두가 다 그렇게 믿었던 시대였다.

 

그런 요시유키는 부모로서 자녀들이 원하는 만큼 공부하도록 지원만 해준다면야

당연히 아이들이 훌륭하게 자라 더 나은 생활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기대가 컸던 것이다. 

그런 요시유키보다 한 세대 아래에 태어난 조카 '히데오'씨는 안타까운 친척 일가의 죽음에

눈시울을 붉히며 과거를 회상했다. 

 

1949년생인 히데오는 일본의 산업자본에서 투자자본으로 전환하던 70-80년대 거품경제 시대에 

단맛을 직격탄으로 맞은 단카이 세대였다며 NHK는 소개했다.

조카 히데오씨는 이번 안타까운 사태에 대해  "삼촌 요시유키는 어디에 내놔도 일반적이고

또 모범적인 가장이었다"며 아버지로서에 요시유키의 과거 모습을 회상했다. 

 

 

"삼촌은 언제나 온화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릴 적에 지로군이나 신이치군과 함께 바다에 자주 가는 등

흔한 아버지와 아들이었습니다." 말했다. 그러면서 히데오는 "그 모습은 어디에 내놔도 일본의

보통적인 가정적 풍경이었습니다 "며  "인상에 남았던 건 삼촌은 나이가 들어도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강했습니다항상 문학 전집이나 경제학 등의 난해한 책을 읽고 독학으로 지식을 얻으려고

계속 노력하는 모습을 자주 봐왔다."며 조카 히데오는 삼촌 요시유키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조카 히데오는 신이치가 히키코모리가 된데에는 우선 그의 아버지와 소통 및

융합을 못한 것 같다며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내놨다. "삼촌 요시유키는 야학에 다니면서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때문에 의지 같은 것이 강했습니다. 그런 한편으론 엄격이라고 할까요?

삼촌 자신이 삶에서 요구하는 이상과 가치가 있었고, 그런 아버지의 어떤 바람이라던지

기대를 느낀 신이치군은 그런 가족의 기대가 의외로 무거웠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히키코모리인채 외톨이로 사망한 조카 신이치 그리고 그의 아버지 요시유키에 대한 속내를 털어놨다.

[일본 단카이 세대 히데오]

- 생전 유일한 정규직이었던 병원 원무과에서의 신이치 

 

아들 신이치는 21세 때 병원 원무과에서 정규직으로 약 10개월간 일했다.

거기서 신이치는 사무직 뿐만이 아닌 야간의 구급 대응 등 여러 병원일을 실시하는 가혹한 근무였다고 한다. 당시 동료들 이야기에 따르면 밤 늦게까지 보험 청구 작업을 하거나 토,일 출근도 당연했던 가운데 진지하게 일하는 신이치씨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이 바빠서 여유가 없었고, 또 당시 직장 동료들이 바라본

신이치 모습은 약간 붕뜬 느낌에 직장에 잘 녹아드는 스타일은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생전 병원 원무과에서 정규직으로 일할 때 신이치]

 

결국 잦은 당직이나 잔업이 이어지는 나날을 못 견뎌내고 신이치는

10개월 후,직장을 떠나고, 그 후 생전 두번 다시는 정규직에 취업하는 일은 없었다며 NHK는 내용을 더했다.

이런 그의 생전 유일한 정규직이었던 병원에서의 근무 기간이 신이치에 대한 아버지의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아들이 되기 위한 노력이었음을 생전 그가 썼던 노트를 통해 드러났다.

 

(신이치의 노트 내용 중)

[사는게 조금도 재미없다. 건강도 좋지 못하다. 아버지 바람대로 일하고 돈을 모아야는데,

취직, 교원, 공무원, 머릿속이 괴롭다.]

[생전 수기로 쓴 신이치의 노트]

- 싸늘한 골방에서 외로이 죽어간 히키코모리 신이치, 그가 바랬던 삶이란?

 

그렇다면 정작 1962년생 신이치 본인은 무엇을 원했을까?

생전 신이치가 쓰던 책상에는, 좋아했던 영어에 관한 서적이 늘어서있었다.

주로 영어에 관한 것으로, 유학이나 외국 생활에 대해서 그가 조사한 정보들을 빼곡히 노트에 정리돼 있었다.

 

책상 서랍에는 전문학교 팜플렛이 봉투에 들어간 채 버려져있는 게 발견되기도 했다.

영국 런던의 거리가 표지로된 노트와 책들이 있었으며 영어로 해외취업에 관한 서적들이 

꽤 많았다. 

 
[생전 신이치 책상에 노트와 서적들]

 

이에 대해 동생 지로는 생전에 형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좋아하는 영어를 살려 취업처를 찾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는 제게 요코하마항에서 무역 관련된 구인을 보여 주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형은 자신의 의사나 기분을 분명히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그런 사소한 이야기라던지 자신의 희망을 전하는 것은 없었던 것이 아닐까요?"

 

NHK와 일본 사회복지당국의 해석에 따르면 우선 신이치는 영어 관련된 일에

미련을 저버리지 못한 듯 했다. 그 외로도 나름 무역에 일부를 담당하는

'포워딩' 업무라던지 그런 것에 관해 아버지와 마음 터놓고 얘길하지 못하는 스타일이었다.

- 매미 같은 아들

 

일하지 않고 집 밖에조차 나오려 하지않는 신이치

외부와 단절된 히키코모리 아들에 영향으로 사회 은퇴를 앞 둔 아버지도 점점 사회에서 고립되어 갔다.

언제부턴가 히키코모리 아들의 존재를 아버지는 부끄러워하게 되었다. 

때문에 동네 사람들라던지 주변으로부터 아들을 숨겨야만 했으며, 나아가 터울없이 지내던 옛 친구들과도

그 관계는 점점더 멀어져만 갔다. 신이치 아버지 일기장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고 있다.

 

(아버지의 일기)

9시에서 10시 사이 이발소에 갔다. 거기서 만난 주변 사람들이 집안 일을 물을 때면 힘들다.

신이치를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가급적 화제로 하지 않게하려 해도 역시, 들켜 버린다.

신이치는, /야 뒤바뀐 생활을 보내고 있다. 화장실을 자주 드나들며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정신병원 진료를 추천해도, 계속 거절한다.]

 

뿐만이 아니었다. 점차 신이치는 식사도 올바르게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일기)

[신이치, 요즘은 식사시 반찬도 잘 먹지 않는다. 역시 실업자인 것이 신경 쓰이는가?

부모로서의 책임을 견딜 수 없다.]

[요시유키 일기]

신이치의 실업자 생활이 장기화 될수록 아버지

요시유키의 일기장엔 점점 초조함과 깊은 고민이 쌓여만 갔다. 관계가 소원해진 부자지간엔

급기야 한 지붕 아래서 거의 대화조차 나누지 않게 되었다.

세월은 어느덧 흘러 쇼와에서 헤이세이 시대로 바뀌었고(1989),

아버지도 아들도 나이를 거듭해 갔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게획대로 되지 않는 분노가 때로는 폭력으로 표출됐다.

 

(아버지의 일기)

[신이치가 건방지게 말 대꾸 하는 바람에 드디어 손찌검을 가했다.]

 

얼마 후 요시유키는, 삶에 기력을 잃은 것처럼 보인 아들의 모습을,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아버지의 일기)

[신이치는 변함없이 생기가 없다. 차라리 예전처럼 건방져도 좋으니 말대꾸라도 했으면 좋겠다.

답답하기만 하다. 아들은 단단한 껍질만 남기고 사라진 매미같다] 

즉, 영혼이 빠져나간 듯 빈 껍질에 아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탈피하고 남은 텅 빈

매미 껍질에 비유했던 것이다. 

 

[요시유키 일기]

 

결국 80년대부터 시작된 신이치의 히키코모리에 관한 일기를 꾸준히 써오며 괴로워하던 

아버지 요시유키씨는 2008년 암으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향년 77세였다.

그리고 얼마 후 같은 해 아내도 사망했다. 

2008년, 한 집에 살던 부모님 두 분 모두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덩그러니 집에 홀로 남게된 히키코모리 신이치. 그의 나이 46세 때의 일이기도 했다. 

 

조카 히데오는 지난 2008년 병원에 입원한 요시유키를 면회 갔던 때를 회상하며 NHK 취재에 응했다. 

"하루는 제가 삼촌을 부축해 화장실 갔던 때였습니다. 그날 삼촌은 제게 '죽고싶다'

말하고는 곧 '아니, 죽고싶지 않아' 말했습니다." 히데오는 잠시 먼 곳을 바라보다간 곧 얘기를 이어나갔다.

 

"저는 그날 삼촌이 주장을 번복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요시유키 당신이 아버지로서

아들만 생각하면 아직 세상에 미련이 많구나'라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뭐랄까요...

그건 아마도 삼촌이 장가도 못 가고 방에만 갇힌  아들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 같은 것이었다고 저는 그때 느꼈습니다." 눈시울을 붉히며 히데오는 말했다. 

[생전(77세)요시유키씨]

- 부모님 모두 떠나고 혼자 남은 히키코모리 신이치

 

혼자가 된 신이치의 고립된 생활은 더욱 가파르게 이어졌다. 건강은 매우 악화되었고

이웃들에 제보로 그런 신이치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시청에선 복지 담장자를 배정하기에 이른다.

홀로 외로이 히키코모리를 앓고있는 신이치 집에 방문한 사람은 시청 복지과에서 근무하는 

기타미 만유키씨였다. 

[신이치 복지 담당 기타미 만유키]

 

현장에 도착한 신이치 복지 담당 키타미씨는 신이치에게 "함께 병원에 가자" 분명한 의사 표명을 했지만,

고집이 센 히키코모리 신이치는 좀처럼 설득에 응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스스로 어떻게든 하고 싶다" 며 신이치는 병원 비치료로 병마와 싸우려 노력했다며 시청 소속

복지 담장자 기타미는 말했다.

 

그러면서 복지사 기타미는 생전 신이치는 앞서 암으로 숨진 아버지의 말을 자주 인용했다고 한다. 

신이치는 "경제가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긴 병은 마음이 약하기 때문"이란

생전 아버지 말씀을 자주 인용하며 "어떡해서든 스스로 건강을 회복해 경제적 안정을 취하고 싶다"

위 같은 말을 자주 했다며 복지사 기타미는 생전에 신이치가 병원 가지 않던 이유를 밝혔다.

 

[신이치 집 화단에 피어있던 나팔꽃]

 

그렇게 가끔 자주 신이치 동태를 살펴온 시청 소속에 사회복지사 기타미였으나,

결국 10일만에 재방문 하던 2018매섭던 칼바람이 불던 겨울, 냉골방에서 신이치는 차갑게 숨진채 발견된 것이다.

형의 죽음 후, 친가를 정리하고 있던 지로씨는, 방 안 가득 벌겨진 쓰레기 산으로부터

형이 기록한 메모를 발견했다. 그리고 형은 그동안 부모님이 남긴 집과 저축 통장에서 돈을 쓰며

신이치는 다행히도 그간 큰 굶주림 없이 일상적인 생활을 보냈던 것으로 확인 됐다. 

 

여러 정황상 히키코모리 신이치를 궁지로 내몬 건 엄밀히 말해 돈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뭔지 모를 일본 사회가 만든 성공 그리고 사회적 인생 지표가 신이치 그의 삶을

사회랑 단절 시키며 스스로 궁지로 빠뜨리게 된 무언가 있지 않았을까? 라며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선 조심스런 의견들이 오갔다. 

- 히키코모리 신이치, 마지막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신이치의 죽음이 일본 사회를 더 안타깝게 만든 것은 숨진채 누워있는 신이치 옆에서 발견된

영어 교재 때문이기도 했다. 신이치가 숨진 2018년 한 해 전에 구매한 것으로 보이는

[2017NHK 영어회화] 교재였다. 교재 여기 저기 영어를 공부한 흔적이 나타났다.

중요한 문구들은 교재에 밑줄 치었으며 여러군데 옮겨 적은 노트들도 발견했다. 

열심히 써나간 영어 노트 구석엔 영어 한 문장이 낙서처럼 새겨져 있었다. 

노력해서 취업하고 싶다. 신이치는 차가운 방에서 죽는 순간까지도

싸늘히 식어버린 방 바닥을 딛고 일어서 문 밖을 나서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숨진 신이치 옆에서 발견된 2017년 NHK 영어 회화]

 

이런 형의 영어 교재 정황을 전해들은 동생 지로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말로 살 희망을 잃었다면, 형은 결국 자살을 선택했겠지만 

형은 역시 살고 싶다는 기분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 성실하게,

조금 이상한 말이지만.... 그렇게 길지 않은 평생이었지만, 형은 그렇게 살아 온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아버지의 일기에 [껍질만 남은 매미 같다]라고 묘사된 영혼없어 보이던 히키코모리 신이치.

아버지께 마저 죽은 영혼으로 보인 그는 그동안 남 모르게 뜨거운 꿈을 가슴에 끌어안고 살았던 것이다.  

세상의 시각으로만 볼 때 무기력한 히키코모리 신이치는 죽는 순간까지도 꿈 그리고 노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상에서 말하는 구제불능 히키코모리처럼 신이치 그의 인생은 결코 구제불능에 히키코모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생전 아버지 요시유키가 그린 그림 - 아들 신이치(안경) 그리고 아버지 본인]

- 소식을 접한 대한민국 정치계에선?

소식을 접한 한/일 양국 정치계에선 이 같은 안타까운 소식에 남 일이 아니라며 우리 모두 앞에 들이닥친
경제 불황과 고용 불안정에서 오는 사회적 문제라며 저마다에 개선책을 내놓고도 있다.
우선 대한민국에 제1 야당 국민의힘 대선 후보인 윤석열 후보는 현재 대통령 문재인의

고용노동 정책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며 자신의 정책안을 거듭 밝혀오기도 했다.

[2021.12.25 서울신문 기사]

2021.12.25 서울신문 기사에 따르면 윤석열 대선 후보는 과거 대통령 문재인이 유권자들을 상대로
최저시급 일만원 맞추겠다는 대선 정책에 관한 언변을 시작으로 현재 시행되고 있는
대통령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시급)/노동시간 정책을 거론하며 고용주가 의무적으로 지켜야만 하는
최저 임금제와 주52시간제에 대해서 정부의 노동 정책이 너무 성급했다고 비판했다.


윤 후보는 25일 ‘삼프로TV’라는 유투브 인터뷰에서 “노동시장 양극화는 최저임금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며 “대기업은 최저임금 규제가 없어도 그 이상이 나가고(최저 임금(시급)을 훨씬 웃도는 고임금 지불)
지불 능력이 없는 기업은 사람을 쓸 수 없고 문을 닫아야 한다. 기업이 이미 양극화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저임금제라는 것은 노동자의 인권을 최소한 보장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지 양극화 해결 방안에서 나온 건 아니라고 본다”며 “사업해서 이익을 얻는 문제에 도덕이나 규범을 먼저 들이대는 것은 문제다. 양극화로 국민 경제 생활이 어려워지면 재정·복지로 해결할 문제이지 지불능력이 안 되는 기업을 문 닫게 만드는 것을 양극화 해소정책이라고 하면 무식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요컨대 윤석열의 고용, 노동 정책안은 근로자에게 임금 지불로 몸살 앓는 어려운 기업이
자율적인 적절한 임금으로 사람을 쓸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원해야지, 지금과 같이 최저 임금(시급)을 강제하는
인상안은 근로자에게 큰 돈을 내줄 수 없는 어려운 기업들이 근로자에게 지불 할 임금 부담으로 인해
시장에서 살아나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되며 그로 말미암아 고용시장이 더 불안정해진다는 지론을 폈다.

요컨대 정부가 어려운 사람에겐 인권 차원으로 복지비용으로 도와주되, 사회에서 저임금에 시달리는
근로자들에 임금 인상은 잘못된 생각이란 자신의 주장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또 대통령 문재인 정부의 주 52시간제 의무화에도 쓴소리를 보탰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윤석열은 근로시간과 관련해 “주 52시간을 폐지 하자는 것이 아니라 3개월, 6개월 단위로 해 기준을 지키게 하자는 유연한 여건을 마련해 주자는 이야기였다”며 “지금도 예외조항은 있지만 당국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 마저도 규제”라고 설명했다.

요컨대 근로시간 주 52시간을 지키되, 특정 기업에 관하여 52시간 의무제는 폐지하여 주 52시간 이상
인력이 동원되야 하는 기업들에겐 당국에 허가없이 기업 임의로 52시간 초과 노동을 시키도록
법을 다시 손봐야 된다는 지론을 폈다.

참고로 윤 후보는 지난 7월 주52시간 제도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가 노동자 킬러라는 별명을 사며
비판을 받은 바 있으며 국민들 사이에선 "윤석열은 부유하게 살면서 군대도 면제받고 내리 9수 사법시험 밀어넣어서
합격해 평생 나라 녹만 먹어 뭘 잘 모른다!"는 국민들에 드센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반대로 윤석열을 옹호하는 국민들은 윤석열 비판자들을 향해 "거지처럼 나고 자라 괜히
윤석열 부유한 배경 시샘하고 열등감 쩐다!"며 윤석열의 과거는 과거일 뿐 비판받을 일이 못된다는 의견이 많았으며,
일각에선 "찢는 걸 좋아하는 이재명 같은 대악마보다얀 윤석열이 낫다!"며
"이번 대선은 최선이 아닌 차선이란 점에서 윤석열이 반드시 승리해얀다!!"는 의견도 국민들 사이에선
적잖게 하울링 치곤 한다.

그렇다면 사람을 치어 죽일 위험성이 다분한 음주운전 전과 경력에 형수한테 갖은 욕설 친형한테 갖은 욕설
게다가 최근 아들 이모씨를 둘러싼 각종 더러운 의혹들에 휩쌓인데다가 입만 열면 숨 쉬는 거 빼고 다 거짓말이란
비판과 더불어 국민들께 쌍욕을 먹고있는 이재명의 고용노동 정책이 사뭇 궁금해진다.

<최근 이재명이 거짓말과 실없는 말을 잘 한다며 대국민 비판을 사게된 이른바 '박근혜 존경 번복 사태' 영상


위 영상으로 말미암아 최근 국민들 사이에선 "이재명의 말은 신뢰할 수 없다!"며
그럼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하고서는 가짜로 존경한다는 것이냐?"는 둥 이재명 그의
말에 여러 의혹과 함께 전혀 신뢰하지 못할 인간이라며 맹비난 중이기도 하다.

[2021.12.17 이데일리 기사]

2021.12.17 이데일리 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선 후보 아들 이동호씨가
불법도박을 비롯 불법 마사지 업소 방문 후기를 남긴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고 한다.

[2021.12.11 매일신문 기사]

2021.12.11 매일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1일 경북 의성군 한 카페에서 진행된 주민들과 간담회 자리에서 유튜브 생중계 채팅창에 올라온
'찢찢찢찢찢'이라는 글을 읽고 "나 욕하는 거죠?"라고 했다.
이 후보가 대선 후보로 선출된 후 '형수 욕설'과 관련된 세 번째 발언이라며 암암리에 '찢'에 대한 의미가
무언지 국민도 이재명도 모두 안다는 것을 매일 신문은 시사하기도 했다.

참고로 '찢'은 이재명이 과거 형수와 음성통화 하던 와중 이재명이 형수에게
갖은 욕설을 하는 과정에서 '여성 성기를 찢는다'는 과격 발언이 나왔고, 그 녹취록을 들은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
형수님에게 나쁜 욕을 입에 담은 못땐 이재명을 야단치고 골탕먹이려는 심리에서 만들어낸
'유행어'이다. 찢는다에 앞 글자 '찢'을 따와 '찢재명'이라고도 하며
'찢찢찢'등 사용자 입맛에 맞추어 '찢'을 활용해 이재명 약올리는 용도로 널리 쓰이고 있는 추세다.

이 '찢'에 근원은 유명한 커뮤니티 사이트 일베 및 혹은 어떤 특정 유투버에 의해서
파생되었다는 소문이다.

먼저 '찢'이 나오게 된 이재명과 형수의 음성통화 내용을 잠깐 소개 하자면 녹취록 전문을 들어보면
앞서 이재명의 친형인 고 이재선씨가 생전 친어머니의 성기 부분을 찢는다는 발언을한 것으로 짐작되는 내용이 있고,
그런 형의 과격 발언 소식을 접한 이재명이 상당히 격한 감정으로 형에게 전화한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것은 형이 아닌 이재명의 형수님이었고, 감정이 격해진 상황에서 이재명은
형수에게 상당히 강력하고 다양한 욕설과 분노를 내뿜게 되는데, 이것이 너무나 충격적이라
녹취록을 들은 국민들은 이재명이 그야말로 '저질'이라며 이재명이라고 하면 그만 질려버려서
손사레 치게 된 것이다.
그런 이재명과 형수간에 과거 강력한 음성통화 내용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이재명은 '찢에 사나이'가 되었다.
이재명 후보의 '욕설통화'로도 널리 알려진 형수와의 음성통화 녹취록은
유투브 및 여러 온라인 검색을 통해 청취 가능하다.

[2021.12.24 쿠키뉴스]

이재명의 고용노동 정책은 현재까지 정부의 정책과 비교해 뾰족히 다른 혁신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그가 최근 내세운 '군 혁신 정책안'에 따르면 현역 사병 월급을 최저 시급
200만원에 맞추는 시대를 연다는 점에서 이재명 그는 현재 대통령 문재인의 최저 임금(시급)안이라던지
노동시간 주 52시간제 의무를 고수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이재명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는다!"며 "아마도 주 40시간제 하고도
남을 위인!!"이라며 이재명은 최근 고용노동 정책에 제일 큰 화두로 떠오른
[최저임금(시급)/주 최대 노동 시간] 부분에선 대통령 문재인을 능가하는 파격적인 진보 정책안이
나올 것이라 내다보는 국민들이 많다.

우선 이재명은 2021.12.24 상당히 파괴적인 진보 정책안을 내세웠다. 바로 스마트 강군을 위한다는
선택적 군 모병제다.

[2021.12.24 이재명 페이스북]

이재명의 공약전문 사이트에 따르면 첨단기술을 적용한 스마트 강군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군인력의 전문화가 절실하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선택적 모병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선택적 모병제란 현재 시행되고 있는 국민개병제(전국민 대상 법적 군 의무화)를 유지하면서
그 가운데 병역 대상자가 ‘징집병’과 ‘기술집약형 전투부사관 모병’ 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 제도이다.
결국 이재명 그의 정책 텍스트만 봐서는 지금에 부사관, 사관 지원할 수 있는 제도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2021.12.25 이재명 공약 전문 블로그 글 캡쳐]


도대체 왜 이런 말 장난을 늘어놓냐며 많은 국민들은 아우성이 있는 반면 일각에선
"기존 시험을 통해 합격해야만 가던 부사관을 이젠 지원만 하면 갈 수 있다는 게 아닐까?" 라며
그 어떤 정확히 언제 시행하겠다는 명확한 날짜라던지 만약 하게 된다면
부사관 병역 기간이라던지 급여 등 이재명 그의 선택 모병제 공약에 좀 더 현미경을 댄
디테일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국민들도 많았다.

그러나 여기서 괄목할만한 점은 일반 사병들에 최저 시급 월 200만원 수준이란 임금 부분이다.
정말 공약이 지켜질지 말지는 미지수이나, 만약 군 일반 사병이 최저 시급을 받으며 근무하게 된다면
군 복무 중이라던지 전역해서도 부모에게 손 벌리는 군인들이 줄고 또 젊은 나이에 군대에서 나름 적잖은
몫돈을 마련하게 된다며 환영하는 부모 그리고 병역 대상인 당사자들이 꽤 많다는 점에서
일부 유권자들이 이재명에게 표를 던질 가능성도 크다며 많은 국민들이 동요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정말 지킬 공약을 내세우는지 어떤지는 아무도 보증해 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국민들은 이재명, 윤석열 둘 중 누구를 통해 국가 정상화를 시켜얄지에 대해 큰 고민 중이다.
문제는 국민 서로간에 생각하는 '정상화'에도 큰 이견차가 많다는 것이며 이를 언론 업자들이
더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2021.12.25 MBC뉴스]

어쨌든 한 해가 저물고 이제 본격적인 대선 시즌이다.
국민들은 윤석열, 이재명 둘 중 하나만 찍어야 된다는 뭔가 모를 이상한 '기류'에 휩쓸려
마치 사회 분위기에 협박 당하는 느낌마저 든다며 아우성이다.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선 이번 대선은 정말 이상한 대선이란 논평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취업을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도전하고 노력하는 대한민국 국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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