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5 일본은 올 여름 개최 예정인 도쿄올림픽 · 페럴림픽 기념우표를 발행한다며 디자인을 공개했다.
판매일은 오는 6월 23일부터 시행한다며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소식을 전해왔다.
구매는 일본 전국의 우체국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할 수 있다.
가격은 낱장 84엔(한화 약 880원)으로, 25장 묶음에 시트 1장 가격은 2천 100엔이다.
이번 올림픽 시리즈는 상당히 종류가 다양하다.
일반 올림픽 경기 종목 50종을 담은 낱장 총 50장을 25장씩 묶어서
시트1/시트2 총 시트2셑트로 구성하였고, 장애인 올림픽(페럴림픽) 경기 종목 총 23종류와
올림픽 엠블럼을 함께 구성하여 시트1 셑트를 완성하였다.
따라서 이번 올림픽 기념우표는 낱장 75장, 시트가 총 3 셑트로 시리즈가 완성된다.
또한 [시트1/시트2/시트3]각 시트당 100만장씩 발행/판매한다며 요미우리 신문은 전해왔다.
특이점으론 코로나(COVID-19) 펜데믹 때문 올림픽 개최 1년 연장으로 2021년인데도
우표에 2020년도 찍혀있다는 점과 일반 종목 시트1,2는 'TOKYO 2020' 로고 색상이 은색인 반면
장애인 종목 시트3은 금색이다.
일본의 우표 역사는 대한민국의 우표 역사와도 상당히 밀접한 관계로
대한민국 우취인들에게 일본 우표는 상당히 관심 높은 종목 중 하나다.
일본의 우표 역사는 1871년 메이지 천황시대로 거슬러 오른다. 영국 문물을 달갑게 접하던 일본은
산업국 완성과 일본제국 완성국으로 발돋음 하기 위해 영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는데,
걔 중 하나가 바로 우표다.
좀 더 앞서 18-19세기 영국에 관해 짧게 짚고 가자면, 영국 근대화의 상징 중 여러개 가운데 하나를 꼽자면
활자의 대중성을 꼽을 수 있다. 빠른 산업국가 발전을 위해 많은 국민들이 활자를 알아야 했기에
결국 계몽혁명이 일게 되는데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편지 주고받기가 생활화 되었고 이러한 수요와 문제인식에서
결국 1840년 검정 바탕화면에 빅토리아 여왕의 왕관을 쓴 옆모습이 아름답게 새겨진
'원 페니' 가격에 '페니블랙'이라 불리는 세계최초 우표가 탄생하게 된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일본에선 드래곤 시리즈라 하여
영국과 똑같은 문제인식(세수확보)으로 우정사(우정사업부)가 차려지고 국가에서 우표인쇄 발행/판매 및
우편 배달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바다 건너 조선에선 김옥균 세력 중심으로 개화파 세력이 다져지는데,
걔 중 일찍이 일본을 다녀온 홍영식이 세계의 큰 흐름에 따라 고종에게 일본을 비롯 서양에서처럼
우리 조선도 우정청사를 국가에서 운영해 나라도 잘 되고 세수도 확보되는...-
여러 좋은 이유들을 들어 왕에게 거듭 상소를 올린 끝에 결국 고종의 칙령으로
1884년 4월 22일 대한민국 최초 우정사업부인 우정총국이 설치된다.
다급히 우정총국이 설치되지만 정작 아직 우표가 없었다.
당시 조선은 근대화가 아주 낯설던 시대인지라 자그만 우표를 대량으로 인쇄할
시설이 마땅치 않아 당시 일본의 우표 인쇄소인
대일본제국정부대장성인쇄소(한국조폐공사 격)에 위탁해 일본에서 인쇄 된 우표를
조선 우정총국에서 매수해 발행하여 조선 내에 판매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그 중 우표 디자인에 홍영식과 국왕이던 고종이 참여했다는 점이
상당히 괄목할만한 점이다.
홍영식은 당시 '대일본제국정부대장성인쇄소'에 도안 5개를 보내
다섯가지 디자인에 우표, 총 5종 시리즈가 발행 될 예정이었지만
최초 오문, 십문 2종류가 먼저 조선에 도착하여 1884년 11월 18일 도착한 2종만
선 발행하며 우정총국의 최초 업무가 시작된다.
그로부터 한달 뒤인 12월 4일 김옥균 중심에 홍영식이 가담한
갑신정변 사태가 일어나고 '거사'는 끝내 실패로 끝나게 된다. 결국 그것이 화근이 되어
개화파 세력들의 모든 것이 음모, 내란으로 눈도장 찍히면서 홍영식의 우표소라 할 수 있는
조선의 우정총국은 그해 12월 6일 폐쇄된다.
그러나 이미 일본에 주문제작 나가 인쇄 되었던 나머지 3종은 우정총국 폐쇄 후인
1885년 2월 뒤늦게 조선에 도착하고 이미 조선은 우체국이며 우표 같은 것이 사라진 뒤이기에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종이쪼가리가 되버린 비운의 미발행 3종이 된 것이다.
어쨌든 홍영식에 의해서 고안되고 창시된 우표이기에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우취인들 사이에선
대한민국 우표의 아버지로는 늘 홍영식이 거론된다. 때문에 홍영식 도안이 박힌 우표가 적잖게 발행되고 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895년 외교적 차원에서 고종은 우표의 중요성을 깨닫고
다시 우정총국을 열어 우표를 발행하는데 10년 지난 그 때도 우표 인쇄할만한
설비를 갖추지 못해 일찍이 왕래가 있었던 미국 인쇄소에 위탁해 공식적으로 두번째인
오푼, 한돈, 두돈오푼, 닷돈(다섯돈)이란 '태극' 초판이 4종 시리즈로 인쇄/ 발행된다. 인쇄기계는 독일제였다.
그 후 1897년 조선의 국호가 대한제국으로 바뀌고도 꾸준히 우표를 발행한다.
1905년 대일본제국과의 을사조약을 맺는다. 그 일을 계기로 대한제국의 행정이
대일본제국정부에 소관 되면서 대한제국의 독립된 우표 발행은 사라지고
대일본제국정부의 우표가 대한제국에서 공통으로 사용된다.
그 후 1945년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 후 전쟁에 승리하고
대일본제국의 자치행정부 조선총독부가 괴멸되면서 맥아더총사령관의 미군정청이
잠시 대한제국 국정 행정을 지휘한다. 그 와중에도 대일본제국 우표는 해방 후
임시 국호인 '조선'에서도 널리 쓰였다.
싱가포르 함락기념으로 1942.02.16 발행 된 히로히토 천황이 새겨진 우표가 1946.02.01 미군정청에서
재발행되었다. 해방이 되었지만 따로 발행한 우표가 없어 기존 사용하던 대일본제국 우표에 '조선우표'와 '5전'
가격을 새겨 사용했다.
미국의 승리로 해방을 맞은 조선은
다음해 5월 1일 해방조선 기념우표를 발행한다. 인쇄는 일본 인쇄국에서 한다.
여기서 한 가지 해프닝은 "해방인데 또 일본이냐?" 라는 문제인식이 제기 되었고
결국 이후로부터는 조선에서 우표가 인쇄되기 시작한다. 훗날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세워지고 일본과는 완전한 분리를 이루며 진정한 독립 된 우표 행보가 시작된 것이다.
참고로 대한민국 최초 올림픽 우표는 1948년 런던에서 치러진
영국런던 올림픽 참가기념우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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